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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문. 새마을 중앙회장 취임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서 말씀 해주십시오.
답. 1962년에 경제개발 제1차 5개년계획을 발표한 후에 새마을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해왔고 제가 97년도 1월달에 새마을운동중앙회장에 취임을 했는데요. 95년에 잘 아시다시피 소득 1만불 시대를 우리가 달성을 했습니다. 그 무렵에 너무 급속한 경제성장의 여파로 소비가 급증하고 사치, 낭비가 심해지고 국민경제가 저축이 부족해서 총 투자액을 따라 갈 수가 없어서 외화보유고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단기외채 도입양이 굉장히 많아서 외환 위기가 우려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문. 97년 당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기관이 힘을 모으고 새마을 조직도 참가 했다고 들었습니다.
답. 그 무렵에 경제가 앞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외국에는 우리 경제를 보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사치 낭비가 심하고 저축이 부족해서 총 투자액을 국개 저축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외채도입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 3백만 새마을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가족들이 앞장서서 우리가 근면, 검소 정신을 다시 되살려서 저축을 늘림으로써 국내 부족한 저축률을 높힘으로써 총 투자액의 부족분을 국내 저축으로 충당을 함으로써 외환위기를 극복을 해보자. 이런 취지에서 3백만 새마을 가족들이 새마을 초창기에 하던 좀도리 저축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매일 밥할 때마다 쌀 한 숟가락씩 덜어내 가지고 저축을 하던 그 정신을 살려서 저축운동을 통해서 외환위기를 극복을 하자라는 운동을 시작했고 이 운동이 바르게살기운동본부라든지 여러 국내 운동단체에 전파가 되고 범국민운동으로 승화가 돼서 국민운동이 활성화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문. 그 운동 중에서 그 외에 생각나시는 다른 운동 있습니까?
답. 새마을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고 다른 국민단체에서 먼저 시작을 한 게 아니고 새마을운동에서 시작하면서 다른 시민단체들도 전부 동조를 확산이 되는 그런 저축운동이었습니다.
문. 그리고 333이라고 해서 국민운동을 제안 했는데
답. 국민 저축운동이 경제 살리기 국민저축운동 공식적으로 명칭이 이렇습니다만 별칭으로 3333운동이다. 이렇게 별칭을 지었습니다. 즉 3백만 새마을 가족이 하루 천원 절약하면 한달에 3백만원입니다. 그래서 3백만 새마을 가족이 월 3만원씩 3년간 저축을 해서 3조 저축 목표를 달성하자 라는 운동으로 3333운동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시작했고 이 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염원을 따지면 좀도리 저축에서부터 그 염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우리 근대사에서 찾으면 대구에서 시작을 했던 1907년에 서상돈 선생으로부터 시작했던 국채보상운동에 현대판이다. 해서 신 국채 보상운동이라 이렇게 이름을 별칭을 지으면서 운동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문. 그러면 성과에 대해서
답. 이 운동은 당시 3백만 새마을 가족이 3조 저축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근데 약 6개월 만에 새마을 가족뿐만 아니라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축목표 당초 3조 달성 목표였습니다만 5조 2천 백억 원이라는 엄청난 저축 계약고를 달성 했고 그 결과 새로운 새마을 조직으로서는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활력화의 계기를 맞았고 오랜만에 범국민 온 국민이 한 힘이 되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목표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년 후에 당시에 우리가 우려했던 IMF관리 통화 체제를 우리가 맞고 엄청난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만 그 후에 금모으기 국민운동으로 승화가 되고 IMF관리체제를 조기 극복하는데 근본적인 동력이 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문. 그러면 새마을운동의 정의라고 해서 간략하게 표현하시자면?
답. 새마을운동은 한마디로 해서 제창자인 박정희 대통령께서 잘살기 운동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천년 동안 가난을 숙명처럼 여겨왔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잘 살기운동 그 기본정신은 근면, 자조, 협동이란 세 정신을 근간으로 해서 우리가 숙명처럼 여기던 가난을 극복하자. 잘살기 운동이라는 것을 가난극복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운동방식은 환경개선. 아마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겁니다. 우리나라는 당시에는 전부 농촌 인구가 85~86%를 차지했고 농가가 전부 세 칸 초가집이었습니다. 반만년동안 내려오던 그 초가집부터 벗겨서 지붕 개량운동부터 시작했습니다.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정신을 새로 일깨우고 그리고 소득 증대로 나가자. 환경개선, 정신 개조, 소득 증대 이런 도식을 발전을 해서 새마을운동이 단 기간 안에 세계가 깜짝 놀라는 한강의 기적에 기본 동력이 되었던 것이죠. 새마을운동은 오천년 민족사에 민족 중후에 신화를 이룬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문. 그러면 새마을운동이 일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답. 외형적으론 우리가 단기간에 선진국에 진입하는 물량적인 성장을 이루는 그런 동력이 되었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새마을운동의 성과는 소위 하면 된다는 요새 세계 각국이 전부 우리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캔 두 정신이라고 번역을 하죠. 미국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과거에 우리나라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숙명처럼 생각을 하고 가난의 둘레는 당연한 조상으로 물려받은 숙명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런 정신을 가져왔고, 이것이 민족정신을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방향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세계 속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뛰고 있는 것이죠. 캔두 정신의 획득이란 거 이것이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성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 새마을운동이 앞으로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필요한지?
답. 새마을운동은 한마디로 말해서 잘살기 운동입니다. 잘 살기 운동이란 것은 우릭 잘산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면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풍요 두 가지가 다 충족되어야만 잘사는 것입니다. 초기에 새마을운동은 오천년 동안 우리가 숙명처럼 물려받았던 가난을 극복하자. 물질적인 풍요,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쭉 추진을 해왔고 그 결과 세계가 깜짝 놀라는 초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모자랐던 측면이 정신적인 측면입니다. 지금 우리가 소득 2만불 시대를 맞아서 살고 있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선진국 국민으로써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 물어보면 여러 가지 정신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각종 이익집단으로 잘게 나누어진 사회가 자기의 이익만을 주장하고 남을 위한 희생이나 봉사이런 것은 외면하고 지극히 냉혹하고 물질숭상주의 그런 사회가 됐습니다. 앞으로 새마을운동은 잘살기 운동의 2대 지주인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풍요. 이중에 특히 정신적인 풍요, 정신적인 고급문화 창출을 위한 그런 운동에 집중을 해야 되겠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부족한 자원봉사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이 나아가면서 사회가 따뜻한 사회, 사랑을 공유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세계에는 선진국이 OECD가입국을 기준으로 하면 30국이 체 못 되는 거죠. 나머지 200여 국가는 저 개발 국가든가 아직은 개발 도상에 있는 국가입니다. 이런 나라에게 우리가 단기간에 이룩한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전수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개발 경험을 전수함으로써 소위 새마을운동의 국제화를 통해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