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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평가를 하신다면
답. 한마디로 말하면 새마을운동은 저변에 대중 국민의 의지를 결집해 내는데 성공한 운동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의지만 결집을 한게 아니라 그 행동력으로도 결집을 해냈다. 그게 저는 핵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또 우리나라 국민도 그렇게 평가하는 것 같아요. 63빌딩이 하나 섰다고 그거 누가 세웠냐? 이런 식으로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공적이 있지만 그건 하나의 경제 행위로 보고 역시 국민의 역량을 결집하는 이게 개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동인이라고 보고. 그것을 성공을 통해서 중진국 진입에 성공한 원동력이 거기서 왔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구체적인 동력은 새마을운동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문. 이때 까지
답. 그래서 나는 최근 까지도 건국 60주년인가 50주년 때도 그렇고 제일 보람있는 성취가 뭐냐면 대게 새마을이 나와요. 새마을운동이. 이게 뭘까. 요즘 젊음이들 잘 모르거든요. 그럼에도 평가를 하는 걸 보고 역시 새마을운동의 성공의 핵은 국민의 역량 집중에 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문. 그게 지금에 와서 우리의 큰 사회적 커다란 자본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답. 바로 그겁니다. 요즘 사회자본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까. 경제학자들도 쓰고 하는데 국민의 역량 집중 동력화한 게, 이게 사회자본인데 새마을운동 초기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었죠. 없었는데 무지한 대중들 이렇게만 처리를 했는데 이게 결집이 되니까 엄청난 역량이 나오고 개발 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국가 예산만 가지곤 안 된다. 안되니까 사회자본을 동력화를 해야한다. 이게 학자들의 새롭게 부상한 한 10년 전부터 새로운 개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점에서 새마을운동이 앞서갔다 그렇게 이렇게 보죠.

문. 그런 운동이 환란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지 않았나요? IMF때라든지.
답. 그렇지 않습니까. IMF때도 IMF가 97년 말에 왔고 전 98년 말에 갔는데 그때 IMF가 뭔지 몰랐죠. 몰랐는데 국가 부채라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때 그러면 뭘 어떻게 하느냐? 새마을운동은 금모으기 운동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금모으기 운동 동전 모으기 운동 큰 자본을 모으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국민의 역량을 결집하는 이게 동력화의 대성공이다 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IMF극복에도 새마을운동이 이게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밑바닥에서 큰 동인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문. 제2의 새마을운동을 내용이
답. 98년 말에 새마을회장으로 갔는데, 솔직하게 저는 가기 전까지는 시민운동가로서 저는 새마을운동을 약간 비판하는 입장에서 섰습니다. 근데 어떻게 해가지고 김대중 정부가 아이고 게어서 시민운동 개념가지고 이걸 새로운 이념체계를 세우고 어쩌구 저쩌구 부탁이 있어서 부탁을 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초창기 빛나는 역사가 있는데, 이미 제가 취임했을 때는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크게 말하면 시민사회가 굉장히 성장을 했죠. 시민사회가 활동이 나오고 하는데 새마을운동은 이제 말하자면 국가 행정이 뒷받침하는 구조적으론 하부구조 비슷한 역할을 했거든요. 그래서 아하 동력을 이것을 독립적인 시민사회운동으로 까지는 못가더라도 그 정도의 자율성을 갖는 운동으로 전환을 한다면 엄청난 세력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사회과학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긴 힘들고, 제2 새마을운동을 하자. 구체적으론 이제 관변단체에서 벗어나자. 자립적인 운동으로 가자. 그런 주장도 하고요. 그 다음엔 이제 이념적으론 좋은 의미든, 다른 의미든,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보수적인데 내고장을 내힘으로 가꾼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시각이 좀 좁아요. 그때 우리가 대북 인도주의 지원도 할텐데 대북지원을 합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뻘쩍 뒤더라구요. 우리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합니까. 그래서 설득을 하고, 그때 저는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이라는 대북민간지원단체를 상임 대표를 하고 있었는데 그 경유로 해서 평양을 좀 드나들 때입니다. 근데 가을을 추수긴데요. 배추를 수확을 하는데 저쪽 도로가 있고 이쪽에 있으니 한 줄로 서가지고 한포기를 나눠주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트럭에 실고 있더라구요. 아하 이거구나. 싶어서 와서 우리가 손수레를 보냅시다. 왜 손수레입니까 그랬더니 수송량이 부족하고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했더니, 그게 새마을지도자들의 마음에 와 닿았어요. 우리가 손수레를 가지고 속칭 리어카라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이거가지고 우리가 국가건설을 했는데 이북이 지금 그 상태인가 보다. 그러면 우리 힘을 결집을 하자. 새마을운동이요.

문. 새마을에서 북한 사업을 한건 처음인가요?
답. 처음이고 생각도 못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상당히 배척을 받았는데 그 역시 우리 부하들이 좋았어요. 손수레운동입니다. 그랬더니 그게가 가슴에 닿는 모양이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말하자면 100만불 모금이었고 1만대 손수레를 보내자 그랬는데 왈가발구 하더니 딱 결정이 되니까. 역시 새마을이예요. 거 큰돈을 모으는 게 아니예요. 지도자들이 만원 이만원 오만원 시도별로 쫙하니까. 백오십만불이 모였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힘으로 처음으로 우리고장이 아닌 시야가 넓은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힘을 결집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대를 준다고 하니까 이북친구들이 트랙트를 주지 뭐 어쩌구 저쩌구 그러는데, 써보니까 그게더 좋거든요. 트랙터 가봤자 타이어 있어요. 베어링이 있어요. 기름이 있어요. 아이거 뭐 다 나갈 수 있고 그래서 만대를 주는데 그 다음에 가니까 더 달라고 그럽디다. 그래서 오천대를 더줬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식 개혁이랄까 그런 것을 포함해서 독립된 운동으로 점진적으로 바꾸어가는 것도 제2새마을 운동의 목표고 우리 일감에 있어서도 고장뿐만 아니고 국가 차원에서 시야를 넓히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나라 60년대70년대80년대 국가건설의 역사에서 대충 초기의 역할은 끝난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러면 해외 우리 수준에 있는 개도국에 이건 전달을 하자. 그래서 세일즈를 해가지고 연해주를 가서도 했고,

문. 그때 연해주가 처음이었나요
답. 그렇습니다. 그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우리가 농사 지어가지고 해봅시다. 그랬더니 우리 새마을지도자 모범농사꾼들이 지원을 하더라구요. 자원 정신이 강해요. 새마을운동이. 거기 가서 1년하고, 농사짓고요. 그런식으로 해서 국제화를 하는데

문. 그전에 국제사업이 없었나요? 와서 연습하는 건 있는데.
답. 없어요. 아 외국 사람이 와서 그건 있었는데 우리가 집접 나가는 건 없죠. 베트남에도 나가고 지금 중국은 불이 붙었지 않습니까. 워낙인구가 많아가지고 점진적으로 하니까 앞으로 몇 년 더 해야 한바뀌 기초 훈련이 끝날꺼에요.

문. 요즘에도 중국사람들 계속 오더라구요. 다른 NGO와의 역할 분담이랄까
답. 분명히 역할 분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반 시민운동 출신인데 배경으로 봐서, 아직도 시민운동은 쟁점 유발하는데 역점이 가있어요. 에도보카시 그룹라고 하지 않습니까. 쟁점을 부각시키는 것 그것도 중요한 것이죠. 개개인이 부각을 못시키는 것 시민운동이 대신 부각시켜가지고 정부에 의해서 가리워지고 기업에서 가리워진 쟁점을 부각시켜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찾는다. 그게 일반 우리나라 시민사회의 주류거든요.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잼정부각 보다도 밑바닥에서 건설해오는 쪽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2새마을운동을 제창 하면서도 표현을 현대적인 표현을 써야 되거든요. 그래서 사회안정망구축을 우리 새마을이 맡자했습니다. 왜냐면 새마을운동이 전국 2백34개 시군구에 다 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요즘은 시들긴 한데요. 여전히 애향심이 강해요. 어디 불났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새마을 옷 입고 뛰어간다구요. 그리고 지금도 하는 줄 아는데 독거노인 김장해 주는 거 새마을 부녀회들. 이렇게 봉사정신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일반 시민단체의 역할분담을 말하라면 우리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봉사활동과 사회안정망에 역할을 우리가 한다. 일반 시민운동은 쟁점유발을 하는 단체다 얼핏 보기엔 우리는 그다지 빛이 안 나죠. 마이크들고 기자들이 와 찍고 그런 건 없어요. 없지 마는 아마 난 행정에서 볼 때는, 제일 고마을 껍니다. 지방행정의 장들은 새마을운동이 가장 고마울 겁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잇는 새마을과가 경북이죠.

문. 그 시대의 경제적인 상황이나 여러 가지 연관이 있었나요?
답. 사회안정망 역할을 하자는 건 제가 의미부여를 한거구요. 일반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지역은 우리의 손으로 불날 때 우리가 뛰어가고 사태가 날 때 뛰어가고 홍수가 나면 뛰어가고 본능적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새마을운동이 사회안정망운동을 국가를 대신해서 우리가 담당하자 그런 주장을 많이 합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이회창 지금 총재가 여당할 땐데 상당히 의심을 했어요. 이게 선거 대비 아니냐? 그래서 만나서 30분 얘기를 하기로 했는데 두 시간을 했어요. 그때 설득은 성공을 했어요. 나는 그 명제는 지금도 살아있다고 봐요. 안할 말로 정부가 몇천억 들이고 돈 펑펑 쓰는데 이거 새마을조직에 어느 정도만 하고 책임을 부여하면요. 굉장한 사회동력이 되고 아까 얘기한 사회자본으로서 극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죠.

문. 새마을운동이 세계화 그런 것들이 왜 필요 한 겁니까. 이 시대에
답. 글쎄 갑자기 연결하라니까 힘든데, 결국은 후진국 개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선진국의 책임이 많거든요. 긴 얘기 빼고도요. 그래서 우리가 아직 제 생각에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는 못 갔다고 보거든요. 중진국 상위권에 있는데 중진국 상위권에 가면 그 역할이 세계적인 역할을 해야합니다. 글로발 시장도 그렇고요. 사회적인 운동도 그렇고 역할을 해야되는데 그걸 우리가 안하면요. 안하면 우리 스스로가 성장이 안된다고 봅니다. 개발학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만불에서 만오천불까지는 국민소득, 노력으로 가능하데요. 육체적인 노동으로 가능한데, 그다음은 사회공헌 그리고 질적인 내용을 담는 일 공중도덕 이런 것 까지 포함해서 그게 안 올라가면 경제 성장도 안 된다. 그게 정설이거든요. 노력가지고 3만불까지 갈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국제적인 공헌과 공생의 세계, 서로 살아가는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산품들이 뭐 엘지하고 삼성하고 하면 좋다 좋다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존경심이 같이 가는 건 아니예요. 가보니까. 저거 저 경제적인 동물, 이윤추구밖에 모른다. 이런 일면이 있거든요. 일본의 ODA가 그렇게 돈을 많이 썼지만 존경을 못 받는 이유가 일본 ODA가 해외 원조가가지고 끄나풀이 너무 많이 붙어 있거든요. 우리 회사 물건 써야한다. 우리회사가 설계 해야된다. 이렇게 되가지고 일대 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국제공헌을 정말 사심이 없는 국제 공헌을 할 때 우리의 성장도 오고 또 같이 살아남는 역할도 오고 그런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문. 자기네들 건설회사 어찌 보면 경제적인 침략수단의 일종으로
답.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우리나라 ODA 얘기하자는 건 아닌데 유상원조가 그런 근런데 빠져있는 측면이 있어요. 일본 흉내 내다가 저는 그것도 유상무상을 통합을 하라 하는 게 그게 제 주장이예요. 통합을 해야지. 유상은 수출입 은행에서 말이야 담보 찾고 조건을 따지고 그거 가지곤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무상원조를 넓히고 코이카에서 하듯이 다행이 젊은이 봉사단을 연간 해외 천명을 보는데 천명 가지곤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2천명, 3천명 보내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중장년 새마을지도자 이런 사람들, 기능공들이 많거든요. 농사 잘 짓는 사람, 기능공 많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자동차 수리 잘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해외에 가서 봉사를 갈 때 우리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의 국제화를 지금은 아직 초보 단계가 되어서요. 노력봉사 차원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이게 조금 기술면까지 수준을 높여서요. 기술지원을 봉사자들에 의해서 공급하고 이렇게 하면 상대방 국가에서 서로 존경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문. 외국에서 빵은 갖다 주는데 고기 잡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들 잘 사는 거 원치 않니냐? 새마을운동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거든요.
답. 유럽이 아프리카에 대한 연간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원조한 액수보다 회수해간 액수가 늘 더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심을 받는 거지요. 근데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ODA나 대외 정책은 그렇게 가선 안 될 줄 압니다. 그렇게 해선 존경을 절대 못 받고 효과도 안 난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문. 그 활동이 결국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보시는지요?
답. 그렇습니다. 상호 작용이니까요.

문. 앞으로 2000년대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답. 저는 새로운 지금까지의 경험 밖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와야 된다고 안 생각하고 우리의 운동 유산 속에 있는 장점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가령 새마을운동의 공로가 있다면 의식개혁운동인데 나는 현대적 의미의 의식개혁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이익집단들이 주류거든요. 데모도 그렇고 이익집달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주장이니까 거기엔 공익적인 주장이 굉장히 약해요. 그런것까지 참고를 해서 새마을운동이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현대사회에 한국수준의 사회에 있어서의 의식 개혁 내용이 뭐냐 하는 것을 깊이 연구를 해가지고 우리 의식 개혁 너무 이기적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는 그걸 우리의 운동의 경험 속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뭐냐면 새마을운동 잘살아 보세가지고 히트를 했거든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된는데, 이게 점점 더 변질이 되가지고, 새마을내부의 내부의 이유 때문에 변질한 것도 있고 한국사회가 너무 경제 우선순위로 가는 것 때문에 변질한 것도 있는데 잘 살아보세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면 나만 잘 살아보세 또한 단계 더 위가 있어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살아보세 이게 지금 단계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것을 초기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좀 순수한 의미의 의식 개혁운동을 우리가 해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폐쇄적인 국익, 나라를 사랑한다는 폐쇄적인 그것 가지곤 안 되고 지금 세계화 시댄데 세계화에 찬반이 많지요. 유엔에 코티와는 총장이 세계화가 좋은 것도 있고 비판도 있는데 이걸 뒤집을 순 없지 않느냐 그래서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베스트를 찾아야 된다. 저도 생각이 그렇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새마을운동의 몺을 찾아야 한다.

문. 당부 말씀
답. 아뇨,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