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원고
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새마을 초기에 제가 내부에서 최초로 새마을 기획기장을 했습니다. 그 기획 기장을 하면서 새마을에 대한 이론 정립과 방향 설정,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말씀 하시면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또 추진 과정을 점검해서 보고하는 일대는 쭉 해왔습니다.
문. 그러면 내무부와 청와대의 관계는 어떤 관계 인가요?
답. 당시에는 내무부는 새마을을 실천하는 주무 부서였고 청와대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구체적인 지시 했지만은 그 실천은 내무부를 중심으로 또 지방지단체 전 부처가 실천했고, 그걸 종합해서 대통령께 보고하는 역할을 준비는 내무부가 했지만 청와대가 새마을 담당 비서관이 있어서 새마을 담당 비서실에서 담당을 했습니다.
문. 내무부 경우 지방의 지도자나 마을과도 긴밀한 연결 관계를 맺었겠네요.
답. 새마을을 처음 시작하면서 정부로 써 조치한 사항들이 청와대 새마을 비서관을 만들고 내부에도 새마을 국장과, 새마을 지도과, 기획과, 또 전 시도에 새마을과를 만들고 시군구까지 새마을과를 만들어서 정부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를 만들고 부락 단위에서는 전 부락에 새마을 지도자를 선출해서 지도자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개 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이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시작해서 서거 후에 혼란을 겪은 걸로 아는데 그 당시 상황은 좀 예기해주시죠.
답. 박정희 대통령께서 새마을운동을 제창하고 활성화 되는 시점에 79년 대통령께서 서거를 하셨습니다. 이듬해 4월 29일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후 약 6개월 후에 새마을 소위 창립 일을 맞이했습니다. 근데 수원 새마을 연수원에 어느 주체 세려고 없는데 전국에서 새마을 지도자들이 모여들었고, 또 새마을 앞장서 추진했던 인사들이 수천 명 새마을 연수원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실내에도 모였지만 밖에 뜰까지 모여서 마이크에 새마을 노래가 나올 때 전 지도자 참석했던 사람이 새마을 노래 함께 불렀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면서 울었던 그런 전장 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역시 새마을 제창한 박정희 대통령에 계시지 않더라도 새마을운동은 영속적으로 추진되겠구나. 확신을 느꼈습니다.
문. 당시 회장님께서는 청와대에 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답. 당시 내무부 생활 과장이었습니다.
문. 그럼 행정상의 혼란이 있었겠네요. 앞으로 어떻게 나갈지, 내무부에선 어떻게?
답. 내무부에선 꾸준히 추진했습니다만 새로운 정부가 5공이 들어서면서 사회정화운동이 국정 통치 운동으로 새로 시작 했습니다. 사회정화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마을운동과 어떻게 병행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논의되면서 한때 사회정화운동이 새마을운동을 통합할 것 같은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통 합이 되지 않도록 제가 앞장서 주장을 했기도 했고 그래서 다행히 새마을운동과 사회정화운동 별로도 추진되었습니다.
문. 실질적으로 오공부터 현재 까지 각 정권마다 지도 이념을 새롭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새마을이 부딪힘을 거듭하면서도 이어온 힘은 어디에 있나요?
답. 새마을운동은 그 정신이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의 그 정체성이, 어떤 시대나 정권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 공동체 사회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추진되어야 할 가치 이념이기 때문에 긴 세월을 거치면서도 정권이 바뀌면서도 또 역사가 바뀌어도 새마을운동이 지속될 수 있다 그렇게 보고 그동안 38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에 많은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국민통합운동이 재기가 되었습니다만 그 운동이 정권이 끝나자마자 거의 중단되었습니다. 사회 정화운동이 그랬고 제2의 금운동이 그랬습니다. 그 이외에 다른 정권에서도 유사한 운동을 했거든요. 예를 들면 도덕성회복 운동, 김영삼 정권시절에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새 질서 새 생활 운동이 추진되었습니다. 그 운동들은 내용은 새마을운동과 같았지만 제목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일선에서 추진하는 조직체는 역시 새마을 지도자들이 새마을운동으로 추진해왔던 것을 보면 역시 새마을운동은 제목과 내용이 조금 바뀌더라도 일제 정권과 상관없이 꾸준히 추진해 올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이라는 게 초창기부터 이론 체계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이 되었는데 어떻게 발전을 할 수 있었나요?
답. 많은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어떤 통치 철학으로 사전에 구상이 되었지 않았나 그런 의견이 있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많은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부락도 다니고 수해현장 다니면서 잘 다듬어진 부락을 보면서 상당히 부러워했어요. 저런 부락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다듬어 졌느냐? 그걸 확인하면서 거긴 지도자가 있었고, 또 주민들이 함께 노력했던 결과였다는 걸 확인하고 이런 마을들을 전국적 마을로 모든 마을로 확장할 수 없느냐. 하는 그런 생각 하에 그때 붙여진 이름이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운동으로 시작 돼서 전국의 새마을운동으로 전파되어가면서 하나하나 이론이 정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새마을운동 근면, 자조, 협동 이런 개념으로 이론이 정립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이 됐고, 그것이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정착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문. 박정희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새마을에 애착을 갖고 또 현장 위주로 하셨는데 혹시 기억나는 현장 에피소드 있습니까?
답. 제가 마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새마을 노래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참여를 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시대에 맞게 새마을운동을 변경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마을운동 추가하면서 대통령께 직접 메모를 하시고 확인을 하고 또 국토사랑, 자연사랑 운동에서는 그렇게 자연을 박정희 대통령은 지역 개발 운동을 많이 추진하면서도, 국토보전, 자연보존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헬기를 타고 지방을 다녀야 하거나 지방에 나들이 가면서 자연이, 산이 해손된 부분은 반드시 확인을 시켰습니다. 그 확인을 제가 담당 했는데 시장군수를 허가하는 산림해손 사항들을 사전에 해서 대통령께 사전에 보고를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고를 해서 이 사람 되겠다, 안되겠다. 확인하면 그때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많은 부분을 시장 군수가 허가한 것 다 취소하고 다시 복원을 시켜서 자연을 가꾸었던, 국토를 가꾸었던 소위 나라 사랑 국토사랑 이것이 누구보다 강했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문. 이제 새마을운동의 앞으로의 방향이나 비전을 얘기해주시죠.
답. 지금 우리 사회가 다양화된 사회로 바뀌었는데 지금 경제 선진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도 사회 선진화가 중요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정치 제도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2만불, 3만불 소득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식에 지적수준이 참 놓습니다.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데 경제성장, 정치제도와 병행하는 시민의식은 거기 못 따라가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21세기 선진화 사회가 되려면 우리 국민들의 시민 의식의 선진화가 중요하다. 이래 생각하고 시민의식의 선진화를 뭘 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시 우리 새마을운동이 그 분야를 맡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서 소위 21세기 세계와 더불어 가는 선진 시민 속에 운동, 정신 운동입니다만 이런 운동을 시대에 맞게 정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또 하나는 이 시대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희망 공동체 운동, 여기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나눔 공동체, 봉사 섬김, 또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소위 에너지를 비롯한 절약, 알뜰 공동체 운동. 이런 운동을 전개해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 새마을이 국내보다는 해외 훨씬 더 알려졌습니다. 글로벌 새마을운동을 제3의 한류운동으로 한국의 브랜드화 해야겠습니다. 특히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취임한 이후에 신 농촌 정책을 표방하면서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접목시켜라. 한국의 새마을운동 배워라. 이래서 중국의 소위 신 농촌 한국의 새마을운동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병행해서 동남아 전체 소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수출하고 그와 계기로 해서 우리의 한류 브랜드화 해서 우리 국가 이미지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다음 젊은 세대 소위 새마을 잘 모르는 인터넷 세대가 있습니다. 소위 우리 인터넷 세대는 생활화 된 지침에서 젊은 세대들이 새마을과 관련하고 인터넷 새마을운동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겠느냐. 새롭게 연구 과제로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해서 지금 다문화 가정이 국제, 또는 국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일 민족 떠나서 이제는 해외 많은 분들이 국제결혼 하게 되는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활양식이 달라서, 정부가 관심을 갖더라고 참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부락단위에 산재된 새마을부녀 지도자들이 나서서 이 다문화 가정을 돌보고 도와주는 이런 문제들을 우리 새마을에서 관장하고 정부에서 도와주면 훨씬 효과적인 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이런 여러 가지 구상들을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 정신과 정립성을 지켜가면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된 내용으로 바꿔서 소위 사회 선진화 운동으로 시대를 한번 국민 역량을 겹집 시키는 노력을 해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 사회 선진화 운동의 경우에 정부와 협력 파트너다 정책 파트너가 되어야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새마을운동이나 어떤 거든지 간에 우리 새마을은 하나의 국민운동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민간 자율적 운동으로 추진해 가되 정부와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을 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부분에서 국가가 해야 할 부분이 있고 민간 부분이 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부가할 수 없는 민간 부분들의 차원들을 우리 국민운동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서 이사회 분위기를 통합하고 하나로 묶어 가는 문제는 정부의 힘 가지곤 부족합니다. 이건 시민단체 또는 국민운동으로 해야 할 그런 분야들을 정부와 함께해야 되겠다. 지금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다양화 돼서 사회 통합 국민 통합, 을 참 모릅니다. 이런 사회 통합운동을, 어떤 정부의 정책이 그렇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또 우리 국민 전체가 동참하면서 공감하는 운동으로 전개하는 이런 내용은 정부와 함께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